코베 일상

코베, 첫 눈, 사랑에 관하여

인귀 2020. 2. 6. 20:32

코베에 첫 눈이 내렸다. (내 기준)

 


나는 첫 눈을 사랑한다. 첫 눈은 로맨틱하다. 재작년 후쿠오카에 살았을 때, 언니랑 같이 코베에 놀러 온 적 이 있었는데 그 때도 눈이 내렸었다. 카페 창 밖으로 눈이 포근하게, 천천히, 조용하게 내리는 그 풍경의 기억이 코베의 첫 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줬다.

 

 

일기예보에서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날, 아주 조금이지만 코베에 눈이 내렸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아 긴가민가했다. 올 겨울은 다른 때보다 너무 따뜻해서 눈이 내리는 걸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눈이 내렸다. 신이 났다. 사랑하는 눈, 사랑하는 코베.

 

 

사랑 ♥

 

 

그래서 눈이 내린 기념으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사랑이 무엇일까?'

 

어렸을 때는 엄청난 금사빠여서 쉽게 사랑하고 쉽게 식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누굴 좋아했는 지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심지어 연예인 조차 누구 한 명을 진득히 좋아한 적이 없이 오늘은 미국 가수, 내일은 한국 개그맨, 다음 날은 일본 배우 이런 식이었다. 그래도 그 때 내 사랑에는 열정이 있어서 아주 뜨겁게 야구를 사랑했고, 무한도전을 사랑했고, 사람을, 책을, 여행을, 많은 것을 사랑했다. 그런 오두방정을 30살이 되면서 모두 내려놓은 것 같다.

 


나의 감정은 언제나 극단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요즘은 모든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내 감정에는 열정이 없다. 사랑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은 참 재미 없는 인생이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눈이 내리는 코베의 창 밖 풍경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후로는 톡톡 튀는 말이나 남들이랑 다른 생각, 행동은 금새 "너 이상해.", "오버하지마.", "그건 틀렸어." 같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다듬어져갔고 눈 깜짝하니 이런 재미없는 내가 되어있었다. 일본에 오고 나서는 내가 더 나이를 먹어서 이기도 하고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도 영향을 받아 더욱 감정을 숨기게 되었다. 둥그렇게 사는 것도 좋지만 10대 때 꿈꾸었던 어른이 된 나의 모습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난 내가 늘 재밌는 사람일 줄 알았고, 그러고 싶었는데... 큰 착각이었다.

 

 

다시 사랑 이야기, 나는 인생에 단 한번 우주와 같은 무한한 사랑을 느껴본 적이 있다. 내 인생의 기적 같은 존재, 작은 천사 내복이. 사랑의 정의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할 자신은 없지만 내복이를 사랑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는 것은 안다.

 

 

내복이 다음으로도 또 다시 사랑하고, 나 스스로 재밌고 싶으니까, 더 열심히 많은 것을 사랑해야지. 앞으로 조금 더 코베를 사랑하고, 더 나 자신과 내 일, 사람, 책, 많은 것을 사랑해야지. 첫 눈 기념으로 사랑을 다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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