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베 일상

영화 기생충

인귀 2020. 2. 20. 00:42

기생충이 개봉하기도 한참 전부터 아는 사람이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길래 듣자마자 괴기스러운 영화의 이미지가 머리에 떠올랐다. 제목만 듣고 잔인한 소재가 들어간 B급 영화 일거라 생각해 "무슨 그런 영화를 봐?"라고 말했던 나 자신, 참 감각 없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에서는 천만 관객을 넘었고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기대감은 최고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실시간으로 뉴스로 접했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탔다는 이야기에 모두가 흥분 상태였다. 나 또한 내 일처럼 기쁘고,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집 근처 영화관에 상영을 알리는 기생충의 포스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한국에 살 때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문화의 날에는 꼭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봤었다. 퇴근하는 길에 혼자 보는 영화는 오롯하게 영화가 주는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혼영은 다른 사람의 웃음 코드를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웃고, 오버스럽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눈물 흘릴 수 있는 즐거운 취미였다.

 

일본에 와서도 혼자 영화관에 자주 갔다. 일본의 영화관은 내가 경험했던 한국의 영화관보다는 비교적 관객들이 적어서 쾌적하게 즐기기 좋았다. 어떠한 영화관이든 포인트 제도를 운영하는 곳이 많아 포인트 카드를 만들고 포인트를 쌓으면 무료로 영화 관람이 가능하다.

 

지금은 109 시네마즈의 포인트를 모으는데, 가입비도 다른 곳 보다 저렴한데 한번 예매할 때 포인트가 중복으로 적립되는 것도 좋아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6번 영화를 보면 1번은 무료로 영화 관람이 가능하다.

 

 

기생충 상영 시간대가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다.

 일본 영화관을 이용하며 아쉬웠던 것은 한국 영화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는 자주 상영하기 때문에 볼 기회는 많지만 한자 투성이인 자막을 읽느라 놓치는 장면들이 있어 아쉽다.

 

일본 영화는 내 취향과 조금 달라 꽤 여러 편 보았지만 감명 깊을 정도로 재밌었던 건 거의 없었다. 한국에 살 때 접한 일본 영화는 한국의 영화 수입회사가 엄선해서 상영한 영화들이라 재밌게 본 작품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일본에서 직접 내가 고른 일본 영화는 그런 장치가 없다 보니 선택 실패가 잦아졌다.

 

어느 날 산책하다가 우연히 본 기생충 일본 개봉 소식에 깜짝 놀랐다. 이미 한국에서는 천만 관객을 넘었지만 한국 영화는 독립영화관에서 많이 개봉하고 상업 영화관에서는 보기 힘들기 때문에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일본에 개봉하고 처음부터 반응이 좋기는 했지만 아카데미 수상 이후 다시 역주행의 기미를 보이며 현재 시점에서 100만 명 관객을 돌파했다. 일본에서 한국 영화가 흥행을 하다니 너무 기뻤다.

 

 

동키호테 담당자도 기생충을 본걸까? :-0

기생충의 인기는 회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일본인들은 일본을 굉장히 사랑하고 한국에는 별 관심이 없거나 혹은 우호적이지 않은 편인데 최근 회사에서 기생충 얘기가 화제가 되곤 했다. 영화, 문화 산업의 영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고, 괜히 내가 다 뿌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작은 나라, 일본보다 못 사는 나라로 생각하고 싶은 회사의 누군가는 한국은 영화를 만들면 나라에서 돈을 준다거나, 한국은 국내 시장이 작아 해외 기준에 맞춘 콘텐츠를 만든다거나 하며 애매모호한 칭찬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팩트로 말한다. 이미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는 걸, 한국 영화 기생충이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단순히 재밌고 잘 만든 영화라서 말이다.

 

매일매일 기생충 생각에 빠져있던 어느 날 동키호테에 갔는데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동키 호테 담당자가 기생충을 봤나보다, 싶었다. 조금 의문이었던 건 다른 한국 식품 마트에서 보는 너구리나 짜파게티는 영문으로 표기되어 있는 제품이었는데 동키호테에서 판매하는 건 왜인지 한글로 표기되어 있었다. 가격도 저렴해 하나씩 겟했다.

 

기생충 짜파구리

 

기생충 속 짜파구리를 재현해보려고 한우는 아니지만 소고기 로스부위를 사서 넣어서 짜파구리를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막내 주려고 만든 채끝살 짜파구리를 막내가 안먹는다고 해서 가정부보고 먹으라고 했다가 '아, 소고기 들어갔지' 하면서 자기 남편 준다고 말 바꾸던 조여정이 단숨이 한그릇 뚝딱하는 장면 때문에 기생충을 본 사람들은 짜파구리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보다.

 

기생충이라는 영화 덕분에 정말 행복했다. 영화가 재미있어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펼치고 아카데미 상을 타서, 일본에서 개봉을 해서, 인기가 많아서... 모든 이유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인 나는 기생충이라는 영화에 너무 고맙다. 

 

앞으로의 봉준호 감독 영화가 기대되고, 기생충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만들 미래의 한국 영화가 기대된다. 더 많은 한국영화들을 일본에서도 쉽게 영화관에서 볼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나의 작은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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