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외국인으로 살기/임신 출산 육아

일본 자연 분만 후기 (1) - 고베 우에다병원 母と子の上田病院

인귀 2023. 11. 22. 22:27

🌟 38주 3일 (11/9 목)
 
자궁문이 3센치 열렸다는 진찰을 받고
5일 뒤, 입원 날짜를 정할 줄은 알았지만 진찰하고 양수 터졌다고 바로 입원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패닉에 빠졌다.

게다가 엄마도 병원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고,
출산 가방도 안가져왔는데... 잠깐 택시타고 집 갔다 온다고 말했다가 간호사가 절대 안된다고 지금 바로 입원실로 올라가라고 해서 일단 엄마한테 근처 구경 멈추고 병원으로 와달라고 연락을 했다.


택시 어플 GO

임신 중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일본 택시 어플인 GO를 미리 다운로드 받아놓았었는데, 처음으로 이용해보았다 :)
 
미리 이용을 위해 신용 카드나 주소 등록을 다 해놓은 상태여서 
바로 어플켜고 택시를 병원 앞으로 불렀다. 
 
택시는 몇분만에 왔는데, 오는 동안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택시가 와서는 기사님께 상황을 설명드리고 양해를 구하고 
집에 갔다가-> 기다려주셨다가-> 병원에 와서 기다려 주셨다가-> 집에 다시 가는 루트를 부탁드렸다. 
 
엄마가 일본어를 못하시니까 굉장히 불안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루트대로 해주셨고 
결재도 등록해둔 카드로 되니까 굉장히 편리했다. 
 
 

모자 팔찌

나는 개인실+화장실 방은 만실이라 일단 개인실이지만 화장실이 없는 방에 가게 됐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입원실에 들어와 누워있는데 간호사님이 엄마와 아이의 팔찌를 고를 수 있게 해주셔서 하나 골랐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연락을 해서 남편이 출장지에서 집으로 오게 되었고,
엄마는 무사히 짐을 병원에 가져다주시고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었다. 
 
휴~ 
한숨 돌리고 나니 아침에 본 생리같은 피가 이슬이 아니고 양수였나 싶었다.
자궁문 3센치 열리고 진통은 안오는 사람들의 케이스가 있는지 인터넷으로 엄청 검색을 해봤는데 결국 진통올 때까지는 언제 출산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고베에서는 유명한 산부인과 중 하나인 우에다병원 母と子の上田病院 의 개인실은 쾌적하고 깔끔했다. 
엄마와 남편은 저녁을 먹으러 가스토에 갔다고 했고 ㅋㅋ
나는 엄마가 출산 가방 미리 싸둔 걸 가져다 주셔서 정리해두었다.
 
우에다병원 母と子の上田病院 은 입원한 사람들에게 매일 속옷 등을 세탁해주시는 서비스가 있어서
종이에 써서 속옷을 넣어두면 다음날 세탁을 해서 가져다 주신다. 
 
다른 종이는 내 몸상태를 체크하려고 식사량과 배변량을 적도록 하는 종이였고,
아래에는 담당 간호사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간호사님들은 낮 담당 간호사, 밤 담당 간호사가 계시고 매일 다른 분으로 바뀌었다. 
 
 

병원

내가 외국인이다보니 매번 간호사분들이 와서 일본어 할 수 있는지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쓸 수 있는지 한자 괜찮은지를 물어보셨다 :) 팔목에는 이름을 써서 팔찌 같은 걸 부착했다.
 
간호사님들은 반은 프로페셔널하고 침착한 느낌이고 반은 엄청 상냥하고 친절한 느낌이었다.
분만이 끝난 후를 돌이켜보면 솔직히 의사 선생님보다 간호사님들이 더 크게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계속 같이 있다보니...
 
 

병원

출산 가방은 병원에서 안내해준대로 아기 배냇저고리, 옷, 기저귀 여분, 내 옷과 속옷, 화장품, 골반 벨트 등을 챙겼는데 아이패드랑 충전기, 간식도 야무지게 챙겼다. 
 
미리 챙겨두길 정말 잘했지 출산하고 나면 시도때도 없이 배가 고프기 때문에 간식이 필수다.
갑자기 입원하고 나서 입이 심심해서 바로 메이플 모미지 하나 까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병원

우에다병원 母と子の上田病院 의 면회는 코로나로 인해 굉장히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면회 시간은 9시부터 17시까지로 가족만 가능하고 1인당 30분으로 시간이 정해져 있다.
 
입원 첫날은 면회할 일이 없지만 나중을 위해 미리 사진을 찍어서
남편과 엄마에게 면회에 대해 알려두었다.
 
 

병원밥

다른 일본의 산부인과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에다병원 母と子の上田病院 은 밥이 맛있게 잘 나오는 평가가 많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병원밥을 보여주면 다들 똑같이 왜 밥이 아니고 빵이 나오냐고 물어보는데 ㅋㅋ
일본사람들은 밥심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한국 사람들이랑은 보는 관점이 다른 듯 하다. 
 
입원 첫날 저녁 식사는 빵과 크림 수프, 샐러드, 치킨 구이 등등이었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엄마가 출산할 때 힘 다 빠진다고 억지로라도 먹으라고해서 열심히 먹었다. 
 
 

병원 간식

주먹밥 두개가 야식으로 나왔다.
안에 아무것도 안들어간 주먹밥이라니 허허 일본 스타일이다.
 
저녁을 푸짐하게 먹어서 야식은 그냥 패스했다.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에게 3

우에다병원 母と子の上田病院 은 병실에 와이파이 제공이 되지 않는다.
미리 안내지에서 안내 받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두었었다.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에게 3
봤던 건데 까먹고 또 다운받았다. 밤에는 할 일이 없어서 재밌게 봤다.
 
너 빨리 보고 싶어
이 대사가 아기를 기다리는 내 마음 같아서 찍어보았다:)
 
 

병원

나는 양수가 터지고 입원을 했기 때문에 감염에 대한 위험이 있어서 샤워를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바로 입원하고 병원 옷으로 갈아입고 있어서 옷은 괜찮았는데 
샤워를 안하니 찝찝해서 물수건으로만 대충 닦고 세수하고 양치만 하고 잘 준비를 했다.
 
출산 전에는 얼마나 철딱서니가 없었는지 
마스크팩을 하고 입원 기념 셀카를 찍었다 ㅎㅎㅎ
 

그래 모르는 게 약이다. 차라리 해맑을 때 그냥 한없이 해맑는게 이득일지도 모르겠다.
 
 
🌟 38주 4일 (11/10 금)
 

병원

병실이 아주 내 집인 것 마냥 쿨쿨 자고 있는데
새벽 6시 조금 지났을 때 담당 간호사님이 간단하게 체온, 혈압 체크해주시고
분만실로 함께 내려가자고 했다.
 
이때 진짜 뭐가 뭔지 몰라서 간호사님한테 
진통 빨리 오면 좋겠네요~ 이런 태평한 소리를 하고 언제쯤 태어날까요 물어보니
오늘 아님 내일 아닐까요 라고 말씀주셨다.
 
나는 틈만 나면 자궁문이 3센치 열려 있고 양수가 터졌는데 진통이 안온 산모가 얼마만에 출산하는지가 궁금해서 나같은 케이스가 있는지 인터넷에 끊임 없이 검색을 했지만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말고는 언제 출산할 지는 모를 일이었다.
 
 

병원

분만실에서 태동검사를 하고 다인실로 옮기래서 다인실로 가서 태동검사하고
다인실에서 촉진제를 맞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누워 있으면서 남편과 연락을 계속 이어나갔다.
 
남편과 엄마도 집에서 5분 대기조로 계속 기다리는 상태였다. 
 
 

병원밥

분만실에 있을 때 아침을 가져다 주셨다.
메뉴는 버거 샌드와 샐러드, 어니언 스프, 요구르트, 쥬스, 홍차였다.
전날 밤에는 억지로라도 다 먹었는데 아침은 정말 안들어가서 반정도만 간신히 먹었다.
 
그렇게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태동검사를 이어가고 그냥 태동검사할 때 허리아프고 불편하다 정도의 상태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오전 9시 조금 지나고 의사 선생님 진찰을 하러 간다. 두둥.
 
11/10 목 오전 9시 15분쯤
 
의사 선생님 내진을 하는데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일본에서 임신하면 정기검진때마다 내진을 해서 어느 정도 아프고 불편한 건 알았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팠다. 
 
느낌으로는 몸 안에 기구를(?) 넣는 거 같았는데 나중에 의사 선생님 설명을 들으니 양수를 터트렸다고 했다. 
다시 병실로 가서 태동 검사를 했다. 
 
11/10 목 오전 9시 25분쯤
 
진진통이 시작됐다.
약 5분에 한번씩 1분, 1분 30초 정도 진진통이 오는데 말도 못하게 아프다. 
최대한 호흡을 하려고 했는데 그러다가도 통증을 못참겠어서 나도 모르게 엎드리거나 눕거나 하기를 반복했다. 
 
진통이 오면 진통 1분정도 되는 그 고통이 너무 괴로워서 미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내일 낳을지 촉진제를 쓸지 그런 얘기들을 했었는데 내진하고 나서 진행이 엄청 빠르게 됐다. 
 
그 와중에 관장 한번 하고 화장실 다녀오고
진통이 아파서 간호사 호출을 두번 정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간호사님한테 아프다고 힘들다고 했더니 좀 걷는 게 도움이 될거라해서 억지로 방안을 조금 걸었던 기억도 난다.
 
 

병원 밥

11/10 목 오전 10시 15분쯤
이제는 너무 아파서 진통 체크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냥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나는데 내가 진짜 내가 맞는지 모르겠는 느낌이다.

아프다는 걸 인식하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 정신 없이 소리지르는 중간에 내가 소리치고 있는 걸 인식했다.
 
간호사님을 불러서 아프다고 아무리 말해도 간호사님들은 네~ 이런느낌이었다.
점심을 먹으라고 가져다 줬는데 그 아픈 와중에 이걸 어떻게 먹으라는 건지 어휴 
 
점점 진통이 1분 정도가 아니라 길어져갔고 기억은
잘 안나는데 이 때는 호흡이고 뭐고 데굴데굴 구를 거 같이 아팠다.
 
11/10 목 오전 11시 50분쯤
분만실에서 남편이나 가족이 함께 진통을 느끼면
마사지도 해주고 좋을텐데 코로나 때문에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서 
오롯이 산모 혼자서 분만실에서 진통을 혼자 느껴야 해서 힘들었다.
 
간호사님들도 다들 안계시고...
사실 계셔도 진통할 때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혼자 있는 게 맞긴 하다...
 
남편이 언제 병원에 와야 하는지를 몰라서 
그냥 집에 있으라고 한 상태였는데 점점 출산이 임박해오는 기분이 들었다.
 
11/10 목 오후 12시 25분
정말 아파서 죽을 거 같은 진통이 계속 이어지다가 간호사님이 밑에 뭐가 내려오는 느낌이 들면 말해달라고 해서 계속 소리지르며 고통스러워 하다가 밑에 뭐가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바로 간호사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들락날락 하시던 간호사님이 확인하시고 "자궁 다 열렸어요!!! 全開です" 라고 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계속 같은 상태로 아파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자궁 다 열렸다는 외침을 들은 순간부터 나 빼고 분만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엄청 긴박하게 간호사님이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오라고 연락했고,
의사 선생님한테 나 자궁 다 열렸다는 연락을 몇번이고 하셨다. 
 
다른 간호사님들이 여러명 막 분만실로 들어오셨고
내 다리를 들고 올리시고 막 이래저래 출산준비를 분주하게 움직여주셨다.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때부터는 진통이 오면 간호사님들 지시에 따라서 힘을 줬다. 
정말 아팠다... 정말 아파서 반 정도는 계속 기절한 느낌이었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리고 간호사님들이 시키는대로 호흡을 하면서 진통이 오면 힘을 줬다.
 
 

탄생

11/10 목 오후 1시 8분
 
남편과 엄마가 분만실로 들어 오는 것 같았는데 잘 기억이 안나고 나는 그냥 반 기절상태로 계속 힘을 주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진통이 오면 힘을 주다가 어느 순간,
"힘주지 마세요 いきまないで" 라고 간호사님들이이 일제히 나에게 소리를 지르시고 나는 미리 배워둔 게 있어서 힘을 탁 빼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그렇게 힘을 빼고 몇초? 지났을까?
아기가 태어났다!!!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이때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데 나중에 영상으로 보니 남편이 탯줄을 잘랐고 나도 아기를 안아보고 했었다. 아기는 바로 간호사님들이 데려가고 남편과 엄마도 일단 분만실을 나갔다.
 
후처리 3시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변에 보면 금방 태반이 나오고 10분정도면 후처리가 끝난다고 하는데
나는 항생제, 진통제 관련 알레르기가 있는 특이 체질이라 후처리가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나에게는 진통할 때의 고통, 출산할 때의 고통과 동일하게 아픈 게 후처리였다.
 
되도록 촉진제를 안쓰려고 했는데 결국 촉진제도 안썼고, 항생제, 진통제도 안쓰고 약물 하나도 안쓰고 출산을 했다.
후처리도 마찬가지로 약을 안쓰고 그냥 내진을 하고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끊임 없는 내진이 이어지고 의사선생님이 계속 후처리를 해주셨고,
진짜 너무 아파서 계속 소리지르고 힘들어했다. 후처리 하고 나서 생살을 꼬매는 것도 자르는 것도 그대로 다 느끼며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거의 3시간동안 기절한 상태였는데 옆에서 계속 돌봐주신 타카미 간호사님 정말 감사한다는 말도 모자를 정도로 감사드린다. 
 
어느정도 후처리 다 되고 의사 선생님, 간호사님들 다 떠난 후에도 타카미 간호사님이 계속 뒷처리 다해주시고 철분 주사 놔주시고 계속 나 정신 잃지 않게 도와주셨다. 
 
4시쯤 됐을 때 타카미 간호사님이 아기를 데려와주셔서 그때 정말 처음으로 정신이 들었다. 
진짜... 그때 아기를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그 전까지는 그냥 나 힘들어서 뭐가 뭔지 모르는 정신으로 출산한 것 같다.
 
왜 우는지 모르겠는데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그치만... 단순하게 볼 때 기쁨, 기쁨의 눈물이었다.

아기를 보고 막 우는데 간호사님이 도와주셔서 남편과 엄마에게 아기 보러 오라고 연락을 할 수 있었고,
간호사님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이동을 했다. 
 
 

병원밥

네시 반쯤 남편과 엄마가 면회를 와서 타카미 간호사님이 아기를 데려와 주셨다.
30분의 짧은 면회 시간이었지만 아기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저녁 식사는 하이라이스가 나왔다. 가족들은 미역국이 아니라서 어떡하냐고 걱정을 해줬다.

나는 거의 잠만 잤고, 밥은 다 먹고, 또 자고, 간호사님 오시면 일어났다가 또 자고를 반복했다.

저녁에 가족들과 통화하고 또 잠들었다가 자지 않을 때는 배가 고팠다.

가족들의 사랑과 고마움을 온몸으로 느꼈다.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해본 종류의 행복을 느끼며 출산한 날 밤은 계속 잠만 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