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베 일상

욕심쟁이의 의욕

인귀 2020. 3. 3. 22:38

작년 한 없이 우울했던 내 안에 활기가 돌고 있다. 애초에 내 우울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되었었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그 갭에서 오는 공허함...

그 욕심쟁이가 의욕을 내기 시작한 계기는 김밥이었다. 우울한 일상에서 불현듯 떠오른 '김밥을 싸서 회사 사람들과 나눠 먹자'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실천, 나는 김밥을 쌌다. 

 

한국에서는 근처에서 쉽게 먹을 수 있었던 김밥 먹기가 일본에서는 어찌나 어려운지, 김밥 싸기는 또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김밥은 늘 한국 가면 먹을 음식이었다.

 

김밥을 만들었어요

새벽에 일어나서 고슬고슬 밥을 짓고, 재료 하나하나 준비해서 김밥을 쌌는데 진짜 너무 행복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 번거로움은 마른 일상에 단비가 되었다. 

 

김밥 싸는 거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지다니, 싶어서 그 다음에는 블로그도 시작했고 취미로 피아노도 배우기 시작했다. 코베를 더 사랑하기로 했고, 새로운 일도 익숙해지기 시작해서 안정기에 접어든 것도 내가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줬다.

 

피아노 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욕심쟁이는 욕심을 부리면 행복해진다는 걸 깨닫고 지금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는 중이다. 하루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적어 두고 내가 실제로 한 일들에는 동그라미를 치면서 매일 작은 실천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정말 작은 일들. 평일이면 아침에 차 한잔 마시기, 서플리먼트 챙겨먹기, 출근하기, 타는 쓰레기 내 놓기, 점심 먹고 산책하기 등 일상적인 것들이 많다. 동그라미 치는 게 너무 좋아서 책읽기에 동그라미 하나 더 치려고 자기 전에 억지로라도 책 한 장, 두 장을 읽고 동그라미를 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매일 운동하기에는 아주 당당하게 엑스 표를 그려넣고 있다. 운동하기는 그냥 자동 엑스다. 뭐, 그래도 좋다. 

 

아무 날도 아닌데 나를 위해서 꽃을 샀다.

주말에는 쉬는 것도 좋지만 집 정리 하거나 혹은 속눈썹 파마 하기, 외출이나 여행하기, 영화보기 같은 것들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지켜본 나는 계획 세우는 것을 너무 좋아하니까 이렇게 소소하게 재미를 찾고 있다.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단 하나가 죽음이라면 죽기 전에 내가 원하는 인생을 누려보고 싶다. 살아가는 것 모두가 과정에 불과하다면 그 걸 즐기고 싶다는 것 또한 내 욕심이다.

 

한국에 부탁한 책이 도착했다. 

문제는 욕심쟁이가 의욕이 과하다는 거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나열해도 너무 터무니 없다. 우선 블로그를 잘 운영하고 싶고, 매일 글을 조금씩 쓰고 있다. 거기에 한자를 잘 하고 싶어서 한자 시험 준비, 토익 공부... 요즘 요리에 빠져서 한식 조리사 자격증에도 도전하기로 했다.

 

이건 정말 오버다. 내가 봐도 이것 저것 다 하고 싶어서 큰일이지만 난 계획 하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니까 내가 정말 계획을 잘 지켜서 성공을 하던 도전으로만 그치던 상관없다. 

 

욕심쟁이는 하루에 다른 사람들 3명 분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너무 웃기지만 진지하다. 출근하는 직장인, 포스팅 등으로 글쓰는 사람, 공부하는 학생으로 ! 오늘도 벌써 출근도 했고, 인스타그램과 포스팅도 했으니 2명의 인생을 살아버렸다. 

 

다만 공부 안하고 그냥 잘 가능성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오늘은 2명 분의 인생으로 그칠 수도 있다 :) 

그래도 좋다. 내일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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