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본

일본 소도시 여행 -전철타고 쿠라시키/돈카츠갓파/오하라미술관/데님스트릿

인귀 2021. 1. 8. 15:42

2021년이 되자마자 엄청 우울해졌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무기력함이 유력했다. 코로나시기에, 요즘 일본 확진자도 정말 많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심했다.

 

조심해서 잠깐만 외출하자.

 

 

여행 준비

목적지는 오카야마와 쿠라시키. 요새 절약을 하고 있어서 최대한 저렴한 교통편을 알아봤는데 우선 가장 빠르고 편한건 신칸센인데 가격이 6천엔 전후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됐다. 그래서 가격이 저렴한 버스편을 알아보았는데 버스는 내가 별로 선호하지 않는 교통수단이기에 한참을 고민했다.

 

그냥 신칸센을 타야하나? 그래도 돈 아끼려면 버스 타야지. 신칸센으로는 한시간 정도 걸리는데 버스를 타면 약 2시간 반정도 걸리고 값은 반이었다. 

 

그러다 시간표를 보는데 오전에 출발하는 버스는 딱 하나 8시 출발편밖에 없었다. 산노미야까지 8시에 가야 하다니 너무 일정이 부담스러웠는데, 그때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은 전철이 정말 잘되어 있는데 갈아타고 가다보면 고베에서 오카야마, 쿠라시키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가격과 시간은 버스랑 비슷하고, 갈아타야하기는 해도 나는 전철이 훨씬 편하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다. 시간대도 딱이고, 전철 타고 고베에서 오카야마, 쿠라시키 가기로 결정했다. 

 

 

눈이 와요

올 겨울은 한국도 눈으로 난리였는데 고베도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말 춥고, 눈도 내렸다. 아침에 전철타러 가려고 나왔는데 눈이 꽤 펑펑 내려서 너무 예쁜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사진으로 담고 싶었는데 전혀 보이지가 않아서 옷에 내린 눈송이만이라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찰칵.

 

 

산노미야역

맨날 걸어다니는 길이고, 밥 먹듯 가는 산노미야역인데도 목적지가 특별한 날은 기분이 남다르다. 괜히 설레는 마음이 너무나도 기쁘다. 

 

 

쿠라시키 가는길

우리집에서 산노미야 역까지 한 정거장, 거기서 급행타고 히메지. 급행을 타면 히메지는 정말 쏜살같이 간다. 산노미야에서 우리집 방향말고 히메지방향 전철을 타면 좋은게 스마 須磨 지나갈 때 바다를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다운 겨울 바다. 그렇게 창밖 구경하며 신나게 달리다가 히메지에서 바로 갈아타고 아이오이 相生 역. 

 

신기한게 갈아타는데에서 전철이 다 기다리고 있어서 실제로는 내가 전철을 옮기기만 할 뿐 시간 지체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아마 많이 겹치지는 않아도 한번 겹치면 이런식으로 시간이 맞춰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일본 전철

아이오이역에서 전철을 갈아타려는데 딱 전철을 보자마자 어! 싶었다. 노란색 전철이 너무 귀여운데 딱 봐도 너무 낡았다. 운치있긴한데 뭔가 불길한 예감... 이걸 타자마자 굼벵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창밖 풍경들도 확 시골틱하게 변해버렸다. 산을 넘어서 느릿느릿 달리다보니 2시간 반정도 걸려서 오카야마역에 도착했다. 

 

 

쿠라시키에 가요

오카야마역에서 바로 또 쿠라시키역에 가는 전철로 갈아타서 20분 정도 더 달려갔다. 나는 오카야마-쿠라시키 여행 코스라면 쿠라시키가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오카야마가 더 큰 도시이긴 하지만 외지인이 관광하기에는 쿠라시키가 볼거리가 참 많다. 

 

 

쿠라시키 상점가

12시쯤 도착했기 때문에 딱 점심시간에 맞춰서 쿠라시키에서 유명한 돈까스 가게를 가려고 쿠라시키 상점가로 향했다. 이 날 꽤 추웠어서 정말 열심히 걸었다. 

 

상점가는 작고 아기자기해서 마음에 들었는데, 그 중간쯤에 위치한 갓파 かっぱ 라는 돈까스집에 갔다. 처음 도착했을 때 앞에 웨이팅 종이가 있길래 이름을 쓰고 한 1분 기다렸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자리가 꽤 있어 보여서, 너무 추워서 기다려도 안에서 기다리자 싶어서 안으로 들어갔더니 카운터석을 바로 안내받았다. 

 

 

쿠라시키 맛집

쿠라시키에 유명한 맛집 중 하나인 돈까스 가게 갓파. 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니까 고민하지 않고 가장 인기 많은 메뉴라고 쓰여있는 톤테이 정식을 주문했다. 밥과 미소시루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추가로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돈까스

두꺼운 돼지고기 비주얼이 보자마자 이 곳이 맛집임을 알려주었다. 주문하고 꽤 조리시간이 있는 편인데 왜인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두꺼운 고기를 맛있게 구우려면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

 

고기가 정말 두껍고 양도 많아서 볼륨이 진짜 크다. 이렇게 양이 많은 줄 알았으면 밥을 조금만 달라고 할 걸 밥을 다 남겨버려서 아까웠다. 

 

 

쿠라시키 맛집

처음에 톤테이 정식 시키면 겨자를 같이 줄지 물어보는데 그냥 소스도 진하고 정말 맛있는데 그렇게만 먹다가 겨자를 소스에 풀어서 같이 먹으면 다른 맛이 나서 맛있다. 

 

고기가 정말 큰데 냄새도 안나고 육즙도 풍부해서 정말 맛있다. 반만 먹고 싸가고 싶었는데 일단은 고기는 다 먹자 하고 맛있게 먹었다. 만약 쿠라시키에 또 갈 일이 있다면 꼭 또 가고 싶은 맛집이었다. 

 

 

쿠라시키

왜인지 가게들이 다 너무 예뻐보여서, 혹은 내가 기분이 좋아서 예쁜 가게들을 괜히 사진에 담아 보았다. 정육점 바로 옆에 레스토랑이 있는데, 분위기가 좋아보이고 분명 고기 요리가 맛있을 것 같아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하고 길을 따라 예쁜 가게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분위기 좋은 빵집이나 카페같은 게 많아서 좋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진짜 여행처럼 즐기고 싶었다. 

 

 

쿠라시키미관지구

쿠라시키에는 쿠리시키미관지구라는 운하를 따라서 오래된 건물들과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고즈넉한 관광 명소가 있는데 상점가에서 걸어오다보면 이어져있으니 역에서 어렵지 않게 걸어서 찾아갈 수 있다. 

 

 

쿠라시키 미관지구

예전에도 여행와서 본 적이 있었는데 역시 예쁘다. 후쿠오카에서 갔던 야나가와 생각나는데 비슷하면서도 또 여기는 더 트렌디한 느낌이 있다. 

 

 

백조

쿠라시키 매력에 흠뻑 빠져 이곳 저곳을 구경하고 있는데 운하에 백조가 한 마리 우아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너무 예쁘고 커서 한참을 보고 있는데 유유히 헤엄을 쳐서 움직여서 따라 가보니 짝꿍이 있었다. 

 

 

오하라 미술관

따란. 내가 쿠라시키에 온 이유. 

오하라 미술관.

 

 

오하라미술관

오하라 미술관 大原美術館 은 예전부터 가고 싶었는데 지지난번에 쿠라시키에 왔을 때는 존재를 몰랐고, 지난번에 왔을 때는 휴관이어서 보지 못했었다. 

 

보통 내가 미술관에 갈 때는 특별 전시회 같은 걸 해서 작품을 보러 가는 거라면 오하라 미술관은 전시회가 아니라 미술관이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거라서 일년 내내 전시하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어른은 1,500엔 입장료로 나레이터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고, 전체 다 둘러 보는데 1시간 정도 걸렸다. 

 

 

오하라미술관

오하라 미술관은 정말 특별하게도 모네와 마네,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대도시도 아닌데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게 너무 신기해서 관람하다가 직원분께 전시 동선 물어보면서 모든 작품이 진품인지 물어봤는데 직원분이 정말 자부심이 담긴 표정과 목소리로 모두 진품이고 일년내내 즐길 수 있다고 작품들을 설명해주셨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유명작들은 없는데, 그래도 유명한 화가들의 진짜 작품을 볼 수 있는 게 참 좋았다. 아름다운 선과 색채, 그림들을 보면서 충분히 마음의 힐링을 할 수 있었다. 

 

오하라 미술관은 나에게 참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줬다. 보통 미술관에 가면 사람이 가득한데 나 혼자여서 내 걸음 소리가 크지는 않을까 신경쓰일 정도였다. 그래서 이런 조용한 관람을 해보네, 싶은 순간 갑자기 아이가 으아아앙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지르고 돌아다녔다. 웃음이 났다. 

 

그리고 또 관람을 하고 있는데 다른 아저씨 한 분이 들어오셨는데 작품들을 거의 2초씩만 보시고 다음으로 넘어가셨다. 그것도 재밌었다. 무슨 그림이 관심 있으셔서 입장료 내고 들어오신걸까 궁금했다. 그렇게 나 혼자 조용히 웃고 1층부터 2층까지 작품들 관람을 이어서 했다. 

 

쿠라시키라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도시의 감성과 미술관에서의 관람까지 모든 순간이 참 즐거웠다. 

 

 

쿠리시키 미관지구

쿠라시키 미관지구를 좀 더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눈에도 많이 담았다. 너무 춥지만 않으면 더 돌아다니고 싶었다. 

 

 

쿠라시키 미관지구

운하에서 배를 탈 수 있는 모양이다. 코로나도 코로나이고, 평일 낮이어서 전철도 그랬지만 쿠리시키 상점가에도 쿠라시키 미관지구에도 사람이 적어서 돌아다니기 편했다. 

 

 

쿠라시키 데님스트릿

쿠라시키 미관지구 거의 끝쪽에 있는 데님스트릿이라는 가게인데 굉장히 유명한 관광 명소이다. 청바지 아이스크림이나 청바지 만두 등 특이한 음식들을 파는데 나는 시간도 없고 돈까스를 먹고 배가 너무 불러서 아무것도 못 사먹었다. 

 

 

쿠라시키

한바퀴 둘러보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오카야마로 가기 위해 쿠라시키 역으로 향했다. 쿠라시키는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에 구경할 수 있는 곳들이 몰려 있어서 관광하기 편하다. 

 

 

쿠라시키 아울렛

쿠라시키는 아울렛이 역에 바로 가까이 있어서 쇼핑하기에도 편리하다. 한국인들이 자주 여행하는 도쿄, 오사카, 북해도, 후쿠오카 같은 곳을 많이 가봤다거나 다른 지역이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쿠라시키 여행도 참 좋을 것 같다. 

 

 

쿠라시키역

쿠라시키에서 오카야마에 가는 전철이 2-30분에 한 대 있는 것 같은데 바로 눈 앞에서 놓쳐서 어쩔 수 없이 역을 구경하면서 기다려야 했다. 대규모의 역은 아니지만 쿠라시키 지역 선물을 판매하는 오미야게 가게도 있었다. 

 

나는 다시 오카야마 가는 전철을 타고 오카야마로 이동했다. 

 

 

에뛰드하우스

오카야마역에 도착해서는 오카야마역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과 만나야해서 괜히 에뛰드하우스 있길래 아이라이너 하나 사고 스타벅스에 가서 핸드폰 충전하면서 시간을 떼웠다. 

 

오카야마역 딱 도착했을 때 몇번이나 와봐서 굉장히 익숙해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 자신만만하게 걷다가 완전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가서 추운데 고생했다. 

 

하루 반나절만의 여행이지만, 참 행복했다. 2021년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이 날이. 

나중에 쿠라시키 갈 일 있으면 돈까스 또 먹으러가야지. 그리고, 또 하나. 전철을 타고 일본을 전국일주 해보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