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베 일상

나의 멍청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인귀 2021. 1. 20. 21:09

31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스스로의 멍청함을 자각하고 있다. 

 

 

 

세리아에서 사 온 색깔 찰흙과 색종이

 

나의 멍청함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걸까?

궁금하다. 

 

내가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나는 절약을 하려고 2리터짜리 물을 사서 마시는데 큰 물통을 들고 물을 마시면 내 입 크기보다 꼭 물을 더 많이 입 안에 가득 넣고는 뿜어버리고 만다. 혹은 옷에 물을 다 흘린다. 

 

이런 일들이 어쩌다 가끔이 아니라 매일 있는데, 며칠전에는 이런 미친짓의 고리를 끊기 위해 "이제 무조건 물은 컵에 따라 마실거야!!!" 라며 늦은감이 있기는 하지만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컵으로 물을 따라 마시는데도 옷에 질질 물을 흘리고 마시는 나를 보게 되었다. 

 

오... 나 자신이여. 물을 천천히 마실 수는 없는거니?

 

 

 

찰흙반지

 

요리를 할 때는 재료 손질을 하면 바닥에 다 흘린다. 이제는 뭘 떨어뜨려도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줍는 게 일상이다. 도마의 끝부분이 올라와 재료를 썰 때 구르는 걸 막아주는 도마를 샀는데, 전혀 소용이 없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해서 내 이야기를 듣고 늘 모두가 그렇다고 나의 멍청함을 위로해준다. 내가 ATM기에 통장 비닐 케이스를 같이 넣고 기계를 고장냈을 때도, 할 일을 메모한 종이를 재활용 통에 버려버렸을 때도 언제나 그랬다. 

 

나는 네이버 웹툰에서 활동하는 자까 작가의 대학일기와 독립일기를 좋아하는데 개그만화라서 웃음이 나서 단순히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다들 사람 사는 건 똑같구나,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러는구나 싶어서 공감이 간다. 

 

그런데 그런 정신승리는 아주 잠깐이고 금새 그래도 자까 작가는 개그로 웹툰을 그릴 뿐이지 머리가 좋고, 그림을 잘 그려서 작가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무섭다. 그런 생각이 자꾸 이어지면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뛰어나고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왜 주변에는 돈을 많이 번 사람밖에 없고, 예쁘고 훌륭한 사람밖에 없는 것일까?

이건 내 멍청함이 만든 환영일지 몰라.

 

 

 

 종이접기

 

똑똑한 사람들의 겸손은 가끔 나같은 멍청이들에게 희망을 주곤 하는데, 그런 착각이 사라지고 초라한 나 자신을 자각하는 게 두렵다.

 

한 번은 언니가 좋은 글이라고 링크를 보내줬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왜 이 사람은 이렇게 글을 잘 쓰는데 나는 그렇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글을 재밌게 읽을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나는 지금 멍청하다. 

 

 

 

종이접기

 

33살이 되어서 그런가? 하고 괜히 나이탓을 해보아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EQ를 발달시키기 위해서 백엔샵에서 종이접기 할 색종이와 색깔 고무찰흙을 사왔다. 나름의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그런데 귀여운 토끼를 접고 싶어서 인터넷을 보고 열심히 만들다보면 그 과정이 너무 마법같이 어려워서 만들다 만들다 결국은 색종이를 찢어 버리고 꾸겨버리고 포기를 하고 만다. 

 

색종이 접기를 하기 전에는 그냥 멍청이였는데, 이제는 성격이 안좋은 멍청이가 되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을까?

아냐 아냐. 

 

나의 유일한 장점은 무엇이든 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이니까.

반면 나의 단점은 비참한 수준의 지구력을 가지고 있는 탓에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것에 있지만.

 

어쨋든, 한다. 

 

 

 

우리집 찰흙대회

 

모든 게 쉽지 않다. 이제 방황은 그만하자 다짐해도, 아무리 좋은 글들을 읽어도. 

지금의 나는 쉽지 않다. 

 

멍청이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