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베 일상

정신 없는 하루 아침/재활용버리기/우체국은행/인터넷설치/물사기

인귀 2021. 1. 8. 16:00

유난히 정신이 없는 하루가 있다. 

 

너무 할 일이 많은데 그걸 천천히 하나하나 하면 되는데,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고, 그러다보면 바쁜 상황에서 조급함이 더해져 상황이 더 꼬이고 만다. 

 

 

프렌치토스트

원래는 아침을 챙겨 먹지 않는데, 월요일에 남편이 출장 갈 때 아침을 챙겨주려고 만든 프렌치토스트. 우유1컵에 소금 반 술, 설탕 반 술을 넣고 계란 2개를 넣고 저어서 식빵을 푹 담궈놓은 다음에 구워주었다. 

 

뭔가 엄청 맛있는 것도 아니고 맛이 없는 것도 아닌 애매한 프렌치토스트가 되어 버렸다. 분명 옛날에 만들어 먹었을 때는 되게 맛있었던 것 같은데.

 

남편이 운전하면서 먹을 수 있도록 종이컵에 소시지와 함께 넣어주었다. 저 종이컵 두개가 딱 들어가는 사이즈가 까르띠에 쇼핑백이라서 그냥 넣어줬는데, 아침에 까르띠에 쇼핑백을 손에 들고 가는 걸 보니 웃음이 났다. 

 

 

파란 하늘, 오랜만이라 반가워

나는 요즘 재활용 쓰레기 중 슈퍼마켓 재활용 통에 넣을 수 있는 2리터 짜리 페트병, 캔 등은 슈퍼마켓에 가지고 가서 버리고 있다. 이 날도 우체국 볼일을 보러 가기 전에 꼼꼼히 우체국에서 할 일을 메모한 종이와 재활용품들을 챙겨서 슈퍼마켓에 제일 먼저 들렀다. 

 

그리고 비밀보장을 들으면서 신나게 재활용 페트병을 슝슝 버리고 있는데 뭔가 팔랑~하며 경쾌하게 내 눈 앞을 날라갔다. 0.1초 만에 그 게 내가 우체국에서 통장 정리 할 내용을 적은 메모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뭉크의 절규 같은 표정이 되었다. 

 

재활용통은 자물쇠로 잠겨있고, 아주 이른 아침이라 손이 닿지도 않을 위치에 종이가 떨어져서 할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한글로 메모가 적혀있어서 누군가가 재활용통에 한국인이 종이 쓰레기를 버렸다고 생각할까봐도 걱정이 됐지만 꺼내기를 부탁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

 

 

우체국ATM

그리고 우체국에 가서 할일을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하느라 뒷사람이 기다리지 않게 내가 한번 ATM을 쓰고 다음 일을 처리하려고 다시 줄을 서서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끼치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번째 줄을 서서 입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계 고장이 났다는 문구와 함께 담당자가 온다는 문구가 떴다. 

 

우체국 ATM은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갑자기 고장이 나니 당황스러웠는데 금방 직원이 와서 기계를 복구해주었다. 그렇게 기계가 고쳐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분이 엄청 친절하게 "고객님 이것도 지폐와 같이 넣으셨어요^_^"하면서 나에게 통장 비닐케이스를 건넸다.

 

Oh my god... 내가 정신 없이 지폐와 함께 통장 비닐케이스를 ATM기에 넣어버려서 고장이 난 것이다.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식은 땀이 났다. 몇번이고 직원분께 사과를 드리고 할 일을 얼른 마무리하고 빠져나왔다. 

 

 

와이파이

일본에서 처음 살 때는 집에 인터넷이 없이 살았고, 두번째와 세번째 집은 멘션 자체에 인터넷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는데 고베에 살기 시작하면서 UQ 포켓 와이파이가 저렴해서 인터넷을 1년 넘게 이용했는데 정말 너무 너무 느려서 불편해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사는 곳에 인터넷 공사가 완료되어 소프트 뱅크에 신청만 하면 해약금이나 공사금 등을 지원해준다는 찌라시를 보고 인터넷을 큰맘먹고 계약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환장 파티가 펼쳐졌다. NTT에서 인터넷 설치를 해주고 갔는데 인터넷이 안돼서 소프트뱅크에 문의하니 연초라 쉰대서 시간맞춰서 다음날 전화를 하는데 무려 1시간 반동안 상담원분과 통화를 해야 했다. 정말 간단한 문의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너무나도 오랜 확인 절차와 반복되는 의미없는 문의,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하셔서 담당자 세분을 바꿔가며 통화를 한 결과 인터넷은 집에 잘 설치되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답변 하나 받기 위해 한 시간 반을 통화하니 진이 빠졌다. 농담이 아니라 전화 끊고 머리에서 열이 펄펄 나서 2시간 동안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결국 인터넷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했기 때문에 공유기 회사와 연락을 했는데 20분 정도의 대기와 설명을 통해 기계를 리셋하고 나서 무사히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었다. 

 

 

인터넷의 소중함

인터넷이 연결되는 순간 얼마나 기쁘던지, 휴. 한국은 기사님이 오셔서 인터넷 연결을 해주시는데 일본 소프트뱅크는 계약은 전화로 하고, 서류를 우편으로 받고 NTT에서 인터넷 설치를 해주고 접속 관련 문의는 소프트뱅크로 전화로 물어보라고 하셔서 접속이 안됐을 때는 또 전화 문의를 해서 해결해야 했다. 

 

상담사분이 몇번이고 죄송하다고 설명하셨지만 너무 답답해서 말을 하다하다 나중에는 웃음이 터질 정도였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말이 안통하는 (인터넷 모뎀이 고장이라는 문구가 뜨고 인터넷 연결이 전혀 안된다는데도 구글에 접속해보세요 라는 답변을 받는 등) 그래도 전화 요금은 소프트 뱅크에서 부담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물 부자

7일부터 긴급사태선언이 나온다는 뉴스를 보고 효고현이 포함되지 않아도 유통에 문제가 생기거나 영향을 받을까 싶어서 물을 동키호테에서 많이 사두었다. 자전거 타고 두번이나 왔다갔다 하면서 쟁여두고, 라면과 스파게티면, 휴지도 미리 사 두었다. 

 

별일 없을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 대비하는 게 마음 편하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 지 모를 정도로 진이 다 빠지는 하루였다. 나도 평일에 집에만 있고, 회사를 안다니니 일본어도 잘 안써서 자꾸 일본어 잊으면 어쩌지 걱정이 됐는데 상담원분과 일본어 연습 원없이 했다.

 

휴. 정신 없어라. 얼른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