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베 일상

퇴근, 그 아름다운 순간

인귀 2020. 3. 19. 22:00

오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는 정해져 있었다. #먹고살기 힘들다 

 

하루는 출근 길에 퇴근을 생각 했고, 하루는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퇴근을 생각했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점심 시간에도 퇴근 시간에도 딱히 개이치 않고 일을 한다. 

 

나는 멋대로 그런 그들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저들은 자기네 인생이 참 재미가 없구나.' 하루에 꼬박 9시간을, 일주일에 꼬박 5일을 회사에서 머물머 일을 하는데, 퇴근을 안하고 싶다고? 미쳤어!

 

 

아름다운 퇴근 길, 하늘

난 퇴근 하는 순간 굉장히 짜릿하다. 행복 지수가 MAX로 치솟고 콧노래를 부르고 싶고 엉덩이를 흔들어 춤을 추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며 모두에게 인사를 한다.

 

"잘 있어라, 바보들아. 오늘도 나 먼저 간다!"

 

사실은 "죄송합니다, 저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すみません。お先に失礼いたします。今日もお疲れさまでした" 라고 팀에 인사를 하고, 옆 팀에 인사를 하고, 사장님 방에 가서 인사를 하고 퇴근을 한다. 

 

퇴근하는 순간은 좋은데 퇴근 전에 먼저 일어나도 될지 눈치보는 시간이 정말 싫다. 다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제일 먼저 퇴근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들 천천히 퇴근하니까 나도 눈치라는 걸 본다. 

 

 

회사 책상에 메모해둔 나의 명심.

나는 퇴근을 늦게 하는 사람을 일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나도 사회 초년생 때 대행사에서 일하며 매일 기본 밤 10시까지 일했고, 늦으면 12시까지도 일했고, 야근 수당도 나오지 않는 회사에서 8시에라도 퇴근 하는 날이면 일찍 퇴근한다고 신나해 본 적도 있었다.

 

근데 그거 다 부질없더라. 나 없으면 안돌아 갈 것 같던 회사는 나의 빈 자리를 참 간단히도 메꾼다. 회사에서 일하는 근무 시간동안 맡은 일에 성실하게 임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내일 할 일을 정리해두고 퇴근을 하는 것. 그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아닐까?

 

 

초코와 카누

회사가 굉장히 조용하고 일만 하는 분위기라 사무실이 굉장히 답답해서 일 하다가 한숨 돌릴 때 초콜릿과 커피가 꼭 필요하다. 커피는 맛있고 식곤증에도 효과적이지만 나는 두통이 생겨 잘 마시지 않았었다가 최근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 마법의 물.

 

원래 인내의 끝은 달콤하다고, 하루의 근무 끝의 퇴근은 참으로 달콤하다. 오늘도 퇴근을 하고 이렇게 집에 와서 포스팅을 한다. 얼마나 좋은가, 퇴근이여. 퇴근하세요. 모두들 퇴근하세요.

 

 

 

점심 산책길

회사에서는 정말 쉴틈없이 일만 하니까 점심시간이라도 혼자 나가 산책을 한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잠깐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면 리프레시 할 수 있다. 

 

가끔은 나한테 월급을 주는 고마운 존재인 회사인데 왜 이렇게도 회사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걸까? 좀 더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자! 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 마음은 부장에게 한 소리 듣고, 차장에게 두 소리 듣다보면 닳고 닳아 희미해진다. 그러면 결국 답은 퇴근이다.

 

 

2017년 프랑스 니스 여행에서

퇴근하고 싶다는 거, 정말 건전한 생각이다. 아직 퇴사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 사람은 평생의 천직이 있다고 하면 직장인이 천직인 사람도 분명 있고, 많이 봐왔다. 나는 아니다.

 

백수가 천직인 사람도 있다. 난 아니다. 난 뭔가 나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싫다고 하면서 발전하는 걸 좋아하는 이상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난 학생이 천직이다.

 

늘 로또 당첨되면 대학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또는 언제나 나를 선택해주지 않고 나는 다시 출근을 해야한다. 요새 진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지 예전에 여행다니던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고 있다.

 

일하고 퇴근하고, 놀아야지:) 그래야 내가 산다. 정말 오늘도 고생 많았다,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