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본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 후쿠오카

인귀 2020. 2. 14. 20:16

주말, 1박 2일 짧은 여행.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 후쿠오카는 여전히 마음이 편하고 따뜻한 곳이었다. 

 

 

 

하카타역 하트 우체통, 진짜 우체통 역할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약속장소로 이용한다.

 

애초에 내가 한국에서 직장 그만두고 일본으로 가기로 했을 때 살기로 했던 도시가 후쿠오카였다. 후쿠오카는 하카타나 텐진같이 번화한 곳으로의 접근성이 용이하고 내가 좋아하는 자연 혹은 시골의 분위기도 가지고 있다. 난 남들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후쿠오카라는 도시를 너무 좋아했고, 갑작스러운 전근으로 후쿠오카를 떠나게 됐지만 남다른 후쿠오카 사랑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후쿠오카 특히 하카타에 있으면 내 자신이 릴렉스가 되는 게 나도 신기하다. 오사카에 가고 나서 처음 후쿠오카 여행을 했을 때는 신칸센에서 하카타 역을 보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까지 했다.

 

사람마다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장소, 좋아하는 도시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뉴욕, 파리 혹은 사람들이 여유로울 때 찾는 제주도나 아름다운 풍경의 북유럽... 나에게는 후쿠오카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후쿠오카를 떠난 후로도 몇 번이나 후쿠오카에 돌아갔지만 갈 때마다 좋았다. 후쿠오카는 나에게 여행하고 싶은 곳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곳 같다. 일본인들에게도 후쿠오카가 포함된 큐슈라는 지방은 살기 좋은 곳으로 통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카타역에 도착하자마자 호텔 체크인부터 했다. 신칸센 개찰구와 가까운 치쿠시 입구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의 그린 호텔에 묵었는데 굉장히 만족했다. 비즈니스 호텔인데 오래 걷느라 지치고 다리 아픈 여행자를 위해 어메너티에 휴족 시간(다리에 붙이는 파스)이 있는 게 너무 센스있다고 느꼈다. 편의점에서 이용할 수 있는 쿠폰도 줘서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여행의 시작이 되었다.

 

 

하카타역, 내가 너무 좋아하는.

 

 

 체크인하고 하카타역을 돌아다녔다.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그 때까지 하카타역 광장에서 하는 마켓도 구경하고 가게들도 구경하다가 하카타 버스 터미널 건물에 오락실에 갔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PUMP를 너무 좋아하는데 이 곳 나무코(오락실)에는 특이하게도 한국식 PUMP가 있어서 자주 이용했었다. 

 

또 PUMP 할 생각에 신이 나서 버스 터미널에 가서 뭇짱만주 먼저 들렸는데 주문이 밀려서 먹을 수가 없었다. 뭔가 기분이 쎄하다 싶더니 버스터미널로 올라가는데 공사중이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없었다. 줄을 한참 기다려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PUMP를 하러 갔는데... 이런, 기계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용자라고는 고작 나 정도인 인기 없는 오락 기계였기 때문이다. 

 

 

하카타역 근처에 새로 생긴 건물

 

그 뿐 아니라 하카타 역 근처에 스타벅스도 새로 생긴 데다가 공차도 그렇고 새로운 가게들이 꽤 많았고, 무엇보다 못보던 큰 건물들이나 호텔들이 새로 생겨 있었다. 뭔가 내가 없는 사이에 변해가는 하카타 역의 모습을 보면서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막상 후쿠오카 사는 사람들에게 말해보았지만 "응? 그런 게 변했나? 새로 생겼나?" 하는 느낌으로 공감을 받지 못했지만 떠난 사람 입장에서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에 친구 만나서 수다 떨고 후쿠오카 이야기도 듣고 너무 좋았다. 밤에는 혼자 호텔에서 정~말 오랜만에 맥주 한잔 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나카스 강, 산책하러 자주 갔었다. 오른쪽 불빛은 관광객에게 유명한 포장마차 거리.

 

다음날에도 아침 일찍 하카타역 구경하다가 점심 때 후쿠오카에서 함께 직장을 다녔고 지금은 둘 다 그 회사를 다니지 않지만 이제 나의 유일한 일본인 친구가 된 친구를 만나서 야쿠인에 갔다. 개인적으로는 텐진이 너무 젊은 느낌이라 번잡해서 많이 안갔었는데 텐진과 가깝지만 야쿠인은 조용하고 예쁜 가게들이 정말 많다.

 

친구와 방송에도 나왔다고 유명한 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예쁜 카페에 갔다. 내가 고민이 있어서 친구와 함께 미리 예약해둔 사주팔자 점을 보러 갔는데,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좋았지만 뭔가 난 따끔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대로 끝내지 못하고 코베에서 다른 곳 한번 더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텐진 코어가 44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문을 닫는다고 해서 친구와 함께 구경을 했다. 세일을 워낙 많이 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친구 말로는 어떤 세대의 후쿠오카 사람도 쇼핑을 즐겼다고 하는 곳인데 아주 큰 쇼핑몰로 공사를 하게 된다고 했다. 

 

텐진에 있는 공차에서 줄서서 친구와 음료 하나 먹고 친구 남편이 합류해 저녁먹고 하카타 역으로 가서 호텔 들렸다가 신칸센을 타러 갔다. 지난 번에 갈 때 주고 싶은 선물이 많아서 좀 많이 챙겨갔더니 이번에는 한사코 아무것도 챙겨오지 말래서 정말로.. 아무것도 안 챙긴 빈손으로 훌훌 후쿠오카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구가 이것 저것 사준 것도 모자라 선물을 준비해줬다. 

 

 

 

야쿠인 카페, 지나가다 건물이 너무 예뻐서 찰칵.

 

다음에는 친구 부부가 칸사이에 놀러오거나 아니면 한국 여행 같이 가고 싶다. 1박 2일 짧은 후쿠오카 여행이었지만 지루한 일상에 큰 힐링이 되었다. 나는 후쿠오카에 갈 때 간다(行く)라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帰る)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만큼 나를 나로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장소. 후쿠오카.

 

난 당연히 나 혼자 짐 가지러 갔다 오라길래 화장실 가려나보다 했더니만 줄 엄청 길게 서서 먹어야 하는 버터 샌드 부터 명란젓(멘타이코)까지 받아버렸다. 미안해서 울상을 지었더니 와 준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야기 해줘서 고마웠다.

 

매일 매일의 회사 다니면서 일상에 지치거나 힘이 드는 날에는 또 다시 후쿠오카에 가야지. 

내가 가장 안심되는 장소, 후쿠오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