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삭제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다 삭제한 건 아니니.
우선 나는 꽤 오랫동안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없었다. 다들 한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아예 관심이 없었다.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라 카카오톡만으로 충분히 소통 가능했고, 흑역사는 이미 싸이월드를 통해 많이 남겨둔 경험이 있는 세대라 굳이 또 그런 기록이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이 없어도 충분히 잘 살았다.
그럼 인스타그램 왜 했어? 누가 하라고 멱살 잡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나는 인스타그램을 순전히 도구로 사용하려고 시작했다.
처음 고베라는 지역으로 이사를 오면서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러면서 블로그 홍보 수단으로 인스타그램을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서 가장 큰 카테고리인 일상과 음식을 나눠 두개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인스타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헤매기도 하고 우왕좌왕했다.
그러다 좀 반응이 있었던 음식 인스타그램 (먹스타)에 주력하고, 일상 인스타그램은 비공개로 전환을 했다.
그렇게 블로그랑 같이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게 2020년 2월이다.
인스타그램은 내 시간을 의미없이 만들고, 야금야금 삭제시켰다.
그렇게 음식 인스타그램은 손에 꼽히는 적은 케이스지만 광고도 진행해 보고,
아주아주 소정의 성과를 걷었다. 그래서 이건 아직 남겨두고 있다. (먹스타에는 하루 10분에서 최대 30분 이상 소요하지 않고 있다.)
내가 삭제한 건 일상 인스타그램이다.
기록용이라며 의미도 없이,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또 똑같이 인스타에도 올렸다.
그러면서 친구들 인스타그램을 구경하고 그랬다. 거기까진 그래, 그럴 수 있다.
근데 정말 스스로가 바보 같은 건, 쓸데없이 연예 기사나 가십거리들을 찾아보고
별로 재미도 없는 웃긴 글 모음집을 뒤적거렸던 시간들이다.
분명히 인스타그램이 없었을 때도 잘 살았으면서,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생기니까 점점 하루의 많은 시간을 인스타그램에서 소비하게 됐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관성으로 틈만 나면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내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해.
그걸 깨닫지도 못하고 폰만 만지던 시기가 있었는데,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하루 종일 아기를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은 정말 적었다. 하루에 십 분이 될 수도, 이십분이 될수도 있는 적은 시간이다.
근데 그 시간을 인스타그램 하면서 보내는 게 너무 아깝다고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흥미로워했던 연예 글들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선균 사건, 그리고 주호민 사건 등을 지켜보면서... 그런 가십거리를 소비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든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가십적인 글들을 안 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피드에 뜨기만 해도 내려 버리고... 그러면서 다른 재밌는 글이 없나 찾으며 정말 아무 의미 없이 스크롤만 내리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래서 돌이켜 생각해 봤다.
나 인스타그램 왜 하고 있지?
비공개 계정이라 좋아요를 많이 받기 위함도 아니고, 특별히 멋진 사진을 공유하고자 함도 아니다.
일기처럼 기록을 남긴다고 하기에는 블로그에도 기록을 하고 있다.
할 이유가 없잖아? 나는 구글에 인스타그램 아이디 삭제하는 방법을 검색하고, 바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삭제했다.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
인스타그램을 삭제한 만큼의 시간이 나에게 하루에서 조금 더 여유를 갖다 줬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블로그 글도 그렇지만 브런치스토리도 다시 시작하고 싶고, 소설도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영원의 숙제 영어 공부.
맨날 한다 한다 몇 년을 그러는 중. 매일 듀오링고로만 공부하고 말았는데, 오늘부터 말해보카도 다운 받아서 좀 더 영어 공부를 하려고 했다. 인스타그램 들여다볼 시간에 영어를 들여다보는 게 훨씬 스스로에게 만족스럽다.
한참 안 읽던 책도 읽는다.
얼마 전에 김 부장 이야기도 1,2,3권 다시 읽었고, 자기 전에 인스타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읽다 만 일본 에세이집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을 재밌어하는 사람, 잘 즐기는 사람, 사진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하면 된다.
그치만 나에게는 그저 내 시간을 의미 없이 만들고 삭제시키는 안 좋은 습관일 뿐이었다.
나쁜 습관 하나를 고쳤다고 생각하니, 속이 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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