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베 일상

20.09 한달동안 나는. 마이너스. ---

인귀 2020. 10. 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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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멘탈에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하는 아주 사소한 가시 돋힌 말에도 온 몸이 뜨거워지고 숨을 잘 못 쉬기도 하고, 금방 눈시울이 붉어져 곤란하다. 사회부적응자, 번아웃 증후군, 우울증...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어쨋든 내 몸과 마음이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잘 해내고 싶었다. 답답하게 느껴지는 회사 사무실도 내가 잘만 하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고, 취미로 하는 것들이나 내가 도전하는 것들도 내 생활을 윤택하게 해줄 줄 알았으며, 하다 못해 이 블로그도 더 멋진 글을 쓰고, 좋은 문장을 남겨놓는 공간이 될 줄 알았었다.

 

 

스투키야 미안해

나 같이 식물 기르기에 소질이 없는 사람도 식물을 기를 수 있다고 희망을 준 내가 애정했던 스투키가 죽어버렸다. 그래도 1년동안 잘 자라주었었는데, 분갈이를 한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방으로 장소를 옮겼던 게 안좋았던걸까? 하루하루 눈에 띄게 한 줄기씩 마르고 시들어 가더니 아예 죽어버려서 속상했다. 

 

그러는 와중에 베란다에 비둘기 새끼가 버려지고 간 일이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물도 줘보고 먹이도 줘보고 했는데 결국 하늘 나라로 가버렸다. 그 아이를 본 시간은 이틀 밖에 안됐지만 까마짱이라고 이름도 지어주고, 꼭 살아서 날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까마짱은 금방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슬픔은 슬픔이고, 까마짱은 우리집 베란다에 있었고, 까마짱이 우리집 베란다에 없어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 일로 구청에 연락하니 동물의 시체는 상자에 넣어 내 놓으면 알려준 주소로 직접 데리러 와주고 데리고 가 주셨다. 

 

 

밝고 동그란 달

회사. 내 영혼을 갉아 먹는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한 번은 바보같이 울면서 그만둔다고 말했는데, 나아질거라는 차장의 말만 믿고 일단은 계속 다니기로 했다. 지금도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회사는 다니고 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수입은 있어야지... 회사는 회사인채로 나는 나대로 살아야 하는데, 하루에 9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끝나고 나면 회사에서 있었던 화가 나는 일들을 곱씹으며 아무도 듣지 못할 화를 내고, 운동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누워서 핸드폰만 만지다가 잠자고 다시 출근하는 아주 건강하지 못한 날들이 반복됐다.

 

게다가 지금 내 주위에는 가족과 친구 한 명 없는 상황. 내 주변에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남자친구와 정신적으로 교감을 하기는 커녕, 서로를 지치게 하는 싸움만 반복하고 있었다. 풀리지 않는 고리를 끊어버리지도 못하고, 풀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나는 머릿속으로 고리를 묶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실제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은 내가 갖고 있지 않다는 걸 고려하지 않은 채. 답답하던 9월이 지나 10월이 된 지금은, 이야기하며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많이 의지하고 있다. 

 

 

스타벅스 신메뉴, 고구마맛탕 프라푸치노

너무 짜증이 나고, 화가 나던 날. 점심에 코코이치 가서 매운 카레를 먹고, 매운 입을 달래주기 위해 스타벅스에 새로 나온 고구마 맛탕 프라푸치노를 마셨다. 큰 스트레스에는 큰 달콤함이 필요했다. 달달한 고구마 맛이 금새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해답은 간단할지도 모른다, 기승전설탕. 

 

9월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그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 오늘 회사에서 내 상황을 들은 동료가 자신도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지고 있다며, 내가 자율신경이 무너져서 남들보다 더 스트레스를 잘 받고, 몸이 아픈 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뭔가 신기했다. 내 머릿속 문제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사실은 몸의 문제였다면, 치료를 받으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아침에 집에서 거미를 발견했다.

내일 크게 내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10월이 되고 나서는 일단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블로그 글도 좀 더 꼼꼼히 작성하고, 쓰던 글들도 다시 끄집어 내서 다시 제대로 써보고. 피아노도 그냥 학원만 다니지말고, 연습 좀 하고 가고. 무리하게 욕심 내는 거 말고, 그냥 어쨋든 하자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실천해 봐야지. 

 

지금 오른쪽 사랑니가 너무 아프고, 구내염 때문에 하루종일 쓰라리다. 약도 바르고 있고, 금요일에 치과 예약도 해뒀으니, 다 괜찮아 질 거다. 토요일에는 미용실도 가야지. 머리를 다시 길게 길러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이 짧은 인생에서 머리 말리는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일본은 가을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해 다음주까지 비가 계속 내릴 것 같다. 머리약이 습도를 이겨내고 내 머릿카락에 잘 스며들어야 할텐데. 하나하나, 다 잘되야할텐데. 일단 오늘 하루는 어떻게 잘 마무리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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