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베 일상

갑작스러운 퇴사 이후 일주일.

인귀 2020. 10. 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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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할 말이 많다. 누구한테? 나도 몰라.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쌓여 있던 게 있어서 잠깐 잠깐씩 숨을 잘 못쉬거나, 손을 덜덜덜 떨거나 전화 응대 하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부르르르 떨리는 증상이 생겼었다. 그래도 참았었는데 과정이 어쨌던 갑작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었다. 

 

 

 

부장님한테 받은 퇴사 선물

 

일본에서는 헤어짐을 가지는 순간이 되면 손수건을 선물해준다면서 부장님께서 내가 퇴사하는 전 날 예쁜 손수건을 선물로 주셨다. 같은 부서도 아닌데 고생한다고 잘 챙겨주셨던 따뜻한 마음이랑 좋은 감정을 잘 간직해야겠다. 평소에 손수건을 가지고 다녀도 꼭 손닦고 나서 까먹고 손수건 사용을 안했었는데, 선물 받고 나니까 선물 받았으니까 더 신경써서 손수건을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 지금 아주 잘 쓰고 있다 :)

 

마지막 출근하는 10.16일 금요일날도, 부장님이 시간 내주셔서 쓸쓸히 혼자 집에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래도 부장님이랑 이야기도 하고, 저녁 식사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1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 길었던 근무 시간 속에서 혼자 퇴근하고 그랬으면 쓸쓸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너무 갑자기 퇴사일이 정해져서, 그만두는 것에 대한 실감이 안났던 게 컸다. 

 

 

 

스타벅스카드랑 민트
책상위에 놓여있던 선물

 

첫 퇴사 얘기는 대략 한 달 전 쯤이었고, 두번째 퇴사 얘기를 하고나서는 정말 갑작스럽게 3일 뒤로 퇴사 일자를 정해주셔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지만 내 몸을 걱정해주시는 배려하는 마음을 거절하지 않고 감사히 받기로 했다. 그래서 나도 작지만 편지 써서 드리려고 스타벅스 가서 사장님, 부장님, 차장님 선물 사서 편지 써서 퇴사하는 날 드렸다. 

 

마지막 날에 보니 책상 위에 타 부서 직원이 준 선물이 놓여있었고, 퇴사하기로 하고 나서 사람들과 얘기도 정말 많이 하고 심적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래도 퇴사하고 일주일 뒤까지 심장이 자꾸 뛰고 불안한 마음이 들고, 두통이 심하고 그래서 나는 멘탈이 정말 약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

 

마지막 근무를 하고, 좀 일찍 퇴근했는데 되게 되게 기분이 안좋았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전혀 홀가분하지가 않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던 거 같다. 그 기분이 이어졌는지 금요일 저녁에 부장님이랑 식사하고 나서 토요일에 몸이 정말, 정말 안좋았다.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잠깐 일어나서 물만 마시고 그렇게 일요일 저녁까지 누워있다가 간신히 정신 차리고, 그 때서야 배가 고파져서 저녁 먹고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

 

한국에서 큰 화제였고, 나도 굉장히 재밌게 봤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일본에서도 개봉해서 보러 갔다. 영화를 보러 나간 것도 좋았고, 영화도 소설만큼은 아니었지만 재밌게 봤다. 일본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히메지역

 

주말을 그렇게 누워서 보내고, 월요일에는 남자친구 일하는 데 따라서 히메지에 다녀왔다. 히메지는 몇 번 가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시골 감성. 어떻게보면 나는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후쿠오카 이지리랑 비슷한 느낌이 나는 곳이면 다 좋다고 하는 것 같다. 히메지는 역 자체가 깨끗하고 엄청 가까이에 히메지 성도 있고, 백화점도 있고, 쇼핑할 곳도 많아서 좋다. 주변 일본 사람들은 히메지 사람들이 좀 거칠다고 하던데, 잠깐 놀러갔을 때는 그런 거까지는 모르겠다. 그냥 막연히 한 번 살아보고 싶다! 변덕.

 

 

 

맥카페
맥카페

 

남자친구 일하는 거 기다리면서 맥카페에 가 있었다. 맥카페가 아예 맥도날드와 계산하는 곳 자체가 따로 되어 있고, 본격적으로 케이크도 있고, 내부도 깔끔하고 넓어서 너무 좋았다. 한국에서도 청담동에 있는 맥도날드가 2층에 맥카페 있고, 디저트 판매했던 것 같은데 한국이던 일본이던 많지는 않은 듯, 자주는 못 만난다. 가계부 정리하고 통장 정리 하다보니 정말 순식간에 오전 시간이 지나갔다. 

 

월요일인데 회사에 안 간 첫날. 오전. 맥카페에서. 순삭. 

 

 

 

스타벅스

 

점심 먹고, 다시 남자친구 일하러 가서 나는 히메지 역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시크릿을 읽었다. 옛날부터 되게 유명했던 책이고, 주변에서도 추천 많이 받았는데 이제서야 읽었다. 읽기 쉬워서 순식간에 읽었는데, 참 좋은 내용이고 나도 책에 나온 내용대로 행동 할건데 내가 너무 세상에 찌들었는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들었다. '진짜 좋은 생각을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질 수 있다고?' 

 

그렇다는데 믿어야지. 그러면서도 또 의심. "믿어!!!"

 

 

 

방구벌레

 

햇살이 잘 들어오는 집 베란다가 너무 좋다. 1년동안 베란다 청소 안한 상태로 있을 때는 싫어했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보기만해도 좋은 공간이 됐다. 이거 완전 원효대사 해골물이랑 비슷한 걸? 같은 공간도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공부가 된다. 

 

베란다 보는데 방구벌레가 찾아와서 붙어있었다. 유칼립투스는 뒤에서 바람쐬는 중. 방구벌레 꼭 붙어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물론 우리집에 들어오는 건 사양하겠지만. 귀여움은 우리집 밖에 있을 때 한정.

 

 

 

초승달

 

집에서 하루 종일 쉬다가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산책하기로 정해서 저녁에 나갔더니 초승달이 정말 밝고 예뻤다. '오 뭐지?' 싶었는데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도 초승달이 있었다. 초승달이 잘 보이는 날인가? 초승달을 보면서 걷다보니 신났다. 요즘 날씨가 정말 좋아서, 낮에는 따뜻하면서 바람이 불어서 기분 좋고, 저녁에는 선선하니 너무 좋다. 

 

가을 날씨는 귀하니까, 즐기고 또 즐겨야지.

 

 

 

 

슈퍼에 갔는데, 와카야마 귤이 1개에 49엔이라 두개 샀다. 이제 귤의 계절이 다가오는거다. 상큼하고, 달콤한 귤 좋아. 올 겨울에 귤 많이 먹어야지:)

 

 

 

소고기 꾸어 먹게찌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어서 소고기를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 소고기 별로 안좋아해서 조금만 사서 상추랑 김치랑 같이 먹었다. 냠냠. 백수니까 이제 식비에 돈 쓰면 안되는데, 그래도 먹고 싶어서 먹었다. 이번만. 과연?

 

 

 

홈카페

 

인스타 감성을 따라하고 싶은데, 나는 그게 어렵다. 인스턴트 커피는 맛이 없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커피 마셔야지 싶어서 열심히 마시고 있다. 슈퍼에서 파는 몬테라 허쉬 케이크가 진짜 맛있다. 저 사이즈 두배 정도 되는 크기인데 가격은 약 300엔 정도로 진짜 저렴하다. 혼자 집에서 '너무 맛있어 너무 맛있어' 하면서 먹었다. 

 

집에서 커피 마시고, 케이크 먹으면서 책 읽고 햇빛보고 힐링. 점점 나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EMS
쪽지

 

집에 낮에 있으니까 택배를 바로 받을 수 있어서 좋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EMS가 왔다. 아마 올 해 들어 제일 기뻤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혼자 박수 들고 거실에서 춤추고 노래 불렀다.

 

아무래도 배송료 때문에 되도록이면 일본에서 파는 걸로 구매하려고 찾아보는데, 아무리 찾아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으면 한국에서 주문한다. 아, 한국은 너무 소비의 천국이야. 인터넷으로 쉽게 살 수 있는 예쁜 것들이 넘친다. 

 

그리고 EMS 보내 주신 우체국 직원 분의 따뜻한 글씨체로 쓰여진 쪽지. 요즘 인테리어 소품에 관심이 많아서 오늘의 집 사이트도 많이 보고, 유투브 중에서 집 꾸미기도 많이 봤다. 나는 왕 똥손이지만, 그래도 이것 저것 보다 보니까 아주 조금이라도 센스가 자라고 있다. 

 

 

 

부추전

 

목요일, 비가 내리길래 부추전을 부쳐 먹었다. 싱그러운 부추향이 끝내준다. 집에 마침 부침가루가 있어서 부침가루랑 부추만 넣고 간단하게 부쳐 먹었다. 간장은 식초랑 고추가루 넣고 양념장 만들었고, 콜라 곁들여 먹기. 

 

 

 

화원

 

평일 내내 낮에 나가서 화원을 구경했다. 산노미야에 맨날 사람 많은 저렴한 화원이 있는데 거기도 몇 번 가서 화원 구경하고, 백화점 근처에 화원도 가고 이것 저것 식물 구경. 초록을 보는 게 너무 좋다.

 

지금 길가에 금목서가 여기 저기 피어있어서 걸어만 다녀도 향기가 퍼진다. 이렇게 좋은 향기를 공짜로 맡을 수 있다니 이렇게 좋을 수 없다. 내가 한국에서도 금목서 향기를 맡은 적이 있었나? 식물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서 몰랐는데, 금목서 향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금목서 꽃말은 '당신의 마음을 끌다' 와. 이렇게 로맨틱한 식물이라니.

 

 

 

홈카페2

 

맨날 구경만 하다가 민트 건물 지하에서 맘에 드는 헤데라 라는 식물이 있길래 하나 데리고 왔다. 아이 예뻐라. 아침에 우유 사다가 인스턴트 커피에 섞어서 라떼 만들어서 빵이랑 같이 먹었다. 찹쌀 꽈배기 같은 건 줄 알고 먹고 싶어서 슈퍼에서 50엔 정도에 저렴하게 샀는데, 맛은 시럽의 달달한 맛이 더해진 우유빵 맛이었다.

 

 

 

김치볶음밥

 

라이프에서 파는 김치를 사다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한참 인테리어 알아보면서 그릇도 진짜 많이 찾았는데, 도무지 무슨 그릇을 살 지 센스없는 나에겐 난제였다. 그러고 또 까먹고 있었는데 이것 저것 구경하러 다니면서 갑자기 야마다 전기에 물 사러 갔다가 보고 한국에서 파는 그릇이랑 비슷한 인스타 감성 그릇인 거 같아서 앞 뒤 안보고 하나 사와 버렸다.

 

그릇 하나 사고 행복해질 수 있다니, 소비는 좋은 것이여... 몰라...

 

 

 

삼겹살
소주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오사카에서 만나서 삼겹살 무제한 가게 가서 한잔~ 맨날 코베에 혼자 외롭게 있다가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고 웃고 그러니까 기분 좋았다. 친구들은 참이슬을 좋아하고, 나는 처음처럼을 좋아해서 둘 다 시켜서 마셨다. 

 

어릴 때는 늘 이러고 놀았는데, 다들 뭐 먹고 사는 게 바빠서 만나기가 힘든지, 아쉽다. 한국에 친구 만나러 가고 싶다 :) 코로나만 아니면 지금 갔다 오면 되는데, 얼른 일상이 복귀되었으면 좋겠다.

 

 

 

감자탕

 

2차로 간 가게에서 감자탕 먹었는데 술을 많이 마셔서 맛은 기억이 잘 안난다. 너무 떠들어서 사장님이 좀 조용히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오사카는 여기 저기에 한국 음식 먹을 데가 많아서 좋다. 국물 먹고 싶으면 여기가고, 고기 먹고 싶으면 저기 가고. 대 만족. 

 

 

 

숙취해소약

 

1차에서도 소주 엄청 마셨는데, 2차에서도 계속 마시다가 서로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친구가 숙취해소약을 사다줘서 다같이 마셨다. 역시, 20대와는 다르게 숙취를 신경 쓰면서 마시는 30대의 술자리.

 

 

 

새벽 첫차

 

놀다가 막차 놓쳐서 노래방 가서 시간 떼우다가 첫차 타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정신 없는 와중에도 해 뜨는 역이 너무 예뻐서 사진 한 장. 첫 차에 사람들 많이 타고 있더라, 다들 술 마시고 첫 차 타고 가는건지 일을 하러 가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산책

 

주말을 숙취와의 싸움으로 보내고, 다시 월요일. 이제 불안한 마음이 많이 줄어들었다. 회사를 안나가고 일주일이 지나고 이 정도로 안정됐으니까, 조금 더 지나면 나는 더 괜찮아지겠지. 하나하나 천천히 해야지.

 

너무 일상이 루즈해지지 않도록 오늘부터는 회사에 가는 것보다 더 바쁘게 지내기로 정했다. 오전에는 일어나서 요가와 명상을 하고, 일자리도 알아보고 책 읽고 피아노 연습을 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인스타랑 블로그에 글도 쓰고, 청소하고 산책하고. 

 

 

 

핸드폰 잠금화면

 

그냥 쉬는 게 아니라, 평소에 하고 싶었던 글 쓰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한다. 한국에서는 회사 다니면서 작법 수업도 듣고 했었는데, 맨날 말로만 글 써야지 하던 걸 이제 실행할 때라고 생각한다. 다 망하고, 실패해도 괜찮아. 다 괜찮아. 그냥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다. 

 

책 시크릿에 나온 대로라면 실패는 생각도 안해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아직 마인드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일단은 다 마음 편하게 먹기로 해본다.

 

 

 

하루 오천자 글쓰기

 

하루에 꼭 5000자씩 글을 쓰려고 오늘부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그 전에 썼던 걸 정리하는 수준인데도 5000자 채우는 게 버거웠다. 그래도 한 자 한 자 썼다. 아, 뿌듯해. 뿌듯하다. 

 

 

 

카페라떼

 

응? 원래 전자렌지에 커피 돌리면 폭발하는건가... 오후에 라떼 마시려고, 전자렌지에 2분 정도 돌렸는데, 이렇게 되어 있어서 당황했다. 덕분에 전자렌지 안이 커피 향으로 가득해졌다. 친구 덕분에 인터넷으로 하는 알바를 5일동안 하게 돼서 밤에는 2시간 정도 아르바이트 하고, 잠을 잔다. 

 

갑작스러운 퇴사를 했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왔다. 나는 지금 되게 행복하다. 정답은 모르겠지만, 지금 되게 좋다. 걱정병인 내 성격에, 하루가 마냥 좋다. 

 

또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해도 그냥 좋다.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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