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타닥
빗소리에 잠을 깨 커튼을 젖히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을 때 드는 생각은 그날그날 다르다.
그래도 거의 이런 생각들이겠지.
출근해야 하는데 우산 때문에 움직이기 귀찮겠다 ... 라던지
혹은 쉬는 날이면 꼭 쉬는 날에 나가려고 하면 비가 내리네
혹은
앞머리 말아도 소용없겠다
양말이 젖을지도 몰라 ... 하다 못해 부침개 먹고 싶다던가 말이다.
비가 오는 날들의 생각이라는 게 그런 것들이었다.
올해 일본에는 장마가 일찍 와서
봄의 시작과 동시에 구름 낀 하늘의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심드렁한 마음일 뿐
비오는 날씨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반갑지도 않았다.
그런 날들 속에서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비가 내리는 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말했다.
어제는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맑은 날씨라 다행이야~
그런데 친구가 나에게
뜬금 없는 말을 했다.
나는 원래 비가 내리는 날을 싫어 했는데 네가 한 말 덕분에 지금은 비 내리는 날도 좋아하게 됐어.
내가 한 말 ?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말이 친구의 마음을 바꾸었다니 궁금했다.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날을 싫어할 이유가 없는 게,
우리가 매일 방청소를 하듯
비가 내리면 평소에 먼지 쌓이고 더러워진 거리를 씻어내 지구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거야.
자동 청소로 깨끗해지니까 엄청 좋지.
게다가 식물들 곡식들도 비를 먹고 자라.
비는 필수지. 비가 내리는 날은 기쁜 날이야.
하다 못해 비가 내리면 부침개, 수제비, 삼겹살 등등 음식들이 더 맛있게 느껴져.
그래서 나는 비가 내리는 날도 좋아해.
응?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
듣고 보니 어렴풋한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아빠가 나에게 해 준 말이었다.
학생 때 비가 내리는 날 움직이기 힘들다고 툴툴 거리니까 아빠가 나한테 똑같이 해준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이상
비가 내리는 날을 싫어하지 않게 됐었다.
언젠가 비가 내리는 날 친구에게 비오는 날에 대하여 말했다.
하지만 나는 바보 같이 언제부터였는지 비 오는 날에 대한 마음을 잊고 지냈다.
비가 내리면 싫지도 않지만 좋은 마음도 없었다.
아빠가 준 말을 내가 가지고 있었고 친구에게 전해줬으면서 말이다.
비 오는 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깨달은 게 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좋은 마음들이
언제 어디에서부터 인지 모르게 많이 까먹거나 닳아 없어지거나 하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은 생각이나 예쁜 감정들이 많이 남아있으면 좋을텐데 ...
비가 오는 날에 대하여.
그래,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할 이유가 없지.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 나오는 카페에 혼자 앉아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 보고 있다.
생각이 없었는데,
몰랐는데
지금 나는 비가 내려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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