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보고싶은 내복이

내복이에게 (17.12.24)

인귀 2021. 12. 14. 21:57
우리 이뿌니
내복아 메리크리스마스. 
지금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있어.
 
나오면서 캐널시티 근처에 동물병원에서 시츄 강아지를 봤는데,
너무 귀여웠어. 너 생각이 많이 났어. 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찔끔 났어.

내복아, 언니 니가 너무 보고싶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였던, 내 곁에 있어줬던 유일한 너의 존재가 너무 그립다.
온 마음이 너를 그리워하고 있는 기분이야. 가끔 니가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는 것만이 위안이야.
 
나는 지금 후쿠오카에 혼자 살고 있어. 아직까지는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없는 이 외로움 속에서 잘 버티고 있어.
 
일본에 와서 느낀 것 중에 하나 말하고 싶은게 있어. 
'카와이이'라는 말은 참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 같아.
 
나는 관종인 것일까?
한국에 살 때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라도 귀엽다는 얘기를 해주면 (가뭄에 콩 나듯) 기분 좋긴 했지만
한국에서 듣던 칭찬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아니면 내가 외국인이라 아직 일본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지도 몰라.
예를 들어 일본인들은 그냥 습관적으로 카와이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잖아. 
 
지난 번에 빨간 원피스 입고 친구랑 야나가와 갔을 때 수학여행 온 것 같은 학생들이
배타고 가는 거 구경하다가 반대편에서 인사하길래 '콩니치와' 하면서 손 흔들어줬더니
중학생 여자애가 튀어나와서 나보고 "카와이이!!"라고 소리쳤는데, 그 때 쑥쓰럽기도 하고 뭐지? 싶었는데 어쨋든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기분 좋았어.
 
그리구 또 얼마 전에 시스템부 직원이 산 엽서 보고 "우와 ! 카와이이데스! " 이랬더니
나보고 "(그쪽이) 카와이이!" 라고 말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말이라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어.
 
마지막으로는 회사 망년회 때 무지 재미없었지만 공짜밥을 먹는다는 것 만으로
위안을 삼던 와중 거의 망년회 끝나갈 무렵에 남자 직원이랑 사수가 내가 혼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거 보고 내 쪽으로 와줬을 때 ! 왜 자냐구, 뭐 이런얘기했을 때 내가 아무생각없이 '혼자서 와인을 계속 마셨더니 술취했나봐요'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남자 직원이 갑자기 반대편 보고 큰 소리로 "아 카와이!!!"하고 소리친거 .
걔도 술취했었나봐 ㅋㅋㅋ 근데 그 찰나였지만 그게 참 기분이 좋더라구.
나 정말 외로운가... 왜 그런 별거 아닌 말들이 기분이 좋냐?
 
난 늘 귀엽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더 기쁜 것 같아.
2018년에는 더 귀여운 짓 많이 해서 남자친구 좀 사귀고싶다.
 
나는 항상 귀엽고 특별하고 싶긴 하지만, 아무생각 없이 한 행동에서 귀엽단 얘기 들으면 기분이 좋아.

내가 너무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한국인들은 어떻게 보면 칭찬에 인색하잖아.
그래서 내가 일본이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 보면서 새롭게 느끼는 감정들 중 하나인 것 같아.

 
아무튼... 심심하고 할일 없으니까 혼자 별 잡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요즘 카와이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언니 또 편지 쓸게. 너무 보고싶은 내복아.
모든 우주의 만물 중에서 가장 카와이이한 내복이.
다시 한번 메리크리스마스. 맛있는 거 먹구 건강 잘 챙기고 있어. 
 
또 편지 쓸 게.



+요즘

어머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구나.
지금은 일본 생활에 익숙져서인지 일본인들의 타테마에 혼네 이런 게 쌓여 와서 인지 카와이이 들어도 가식이라는 생각밖에 안드는데... 나 4년 동안 얼마나 부정적인 인간이 된거지?
아니면 4년 전의 내가 너무 순수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소름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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